마음 챙김
구름이 포근한 솜사탕처럼 하늘을 거닐고, 시리고 푸르른 바다 위로 느릿느릿 춤춰요.
천천히 움직이는 한 폭의 그림이 거대한 네모 프레임 안에 담겨 있어요.
아이는 그 프레임 앞에 턱을 괴고 한없이, 한없이 바라봐요.
그 느린 작품의 무엇이 즐겁길래 그리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걸까요.
어떻게 가던 길을 멈추고 창문 너머에 시선을 둘 수 있는 걸까요.
내 시선은 언제나 그 창문 너머가 아닌 아이에게 있어요.
나는 그 작품들을 즐기지 못하거든요.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건 핑계고, 그냥 재미가 없는걸요.
그치만 다들 아이가 부럽다고 말해요. 나도 그렇고요.
나는 오히려 아이가 창문 밖을 들여다보는 것에 압도되고 있었어요.
"마음 챙김이라는 방법이 있어요. 명상의 한 방법인데요, 생각하지 않고 오감으로만 느끼는 거죠."
"아, 뭔지 알 것 같아요."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을 내놓아요. 내 앞에 앉은 그 사람에 말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니면, 이유는 나중에 갖다 붙인 것이고, 학습된 결과를 그냥 기계적으로 출력했을 뿐일지도요. 뒤늦게 그 사람의 말을 곱씹어보니 어딘가의 책에서 읽었던 것도 같아요. 하지만 어떻게 생각을 그만둘 수 있다는 걸까요? 지금 이 순간조차도 하고 있는 것이 생각인데 말이에요.
"잠깐 멈춰서 호흡을 느껴 보세요. 공기가 어디로 들어가고 다시 어디에서 나오는지 집중해 봐요. 그러면 잠시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에요."
그렇게 말하는 맞은 편의 당신은 그냥 내 의문에 대한 답을 그저 이론적으로 읊고 있는 것 같았어요. 어쩌면 내가 경청은 잘 해도, 내 생각을 잘 말하지 않기 때문일지도요. 상담 시간인데도, 내가 내 얘기를 하지 않고 상담가에게 경청하고 공감하고 있는 거에요. 나는 실제로 '요새 생각이 많아서 곤란하다'라는 한 마디만 꺼냈거든요. 그 이후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고개를 끄덕이고, 당신에 말에 추임새를 넣는 데 시간을 다 썼죠. 내 특성 때문이지 당신 잘못은 아닌데, 아무튼 피곤하게 만들었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이론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아요. 정립된 이론에는 반응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좋네요. 비판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고. 물론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리는 없지만요. 아무튼,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에 집중하려 하니 '코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었더라?', 하고 생각이 나서 실패했어요.
그래서 대신,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을 피부로 느끼는 것으로 대신했어요.
...
"어때요, 생각이 멈추죠?"
"정말 그렇네요."
글쎄, 그 기억을 떠올리니까 나도 프레임을 응시하는 하나의 존재가 되어버렸지 뭐에요.
누군가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네요. 작은 아이는 고개를 돌리고는 응, 이라고 외치며 달리기 시작해요.
나도 다시 달리면 되는 걸까요. 하지만 프레임 속 풍경이 재미가 없어졌어도, 그 앞에 더 오래 있고 싶네요.
왜 살짝 울적해지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치만 위로받는 기분이에요.
난 다른 것보다도 이런 시간이 필요했었나 봐요.
어차피 누군가에게 말하지도 않겠지만, 걱정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 뿐만 아니라, 다들 달리는 게 익숙한 편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