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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말고 암선행] 일러스트
[암살 말고 암선행] 일러스트
2024.03.03
변화
변화
2023.11.09다시 추운 계절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덤덤한 것인지, 아니면 교통 수단이 지나치게 따뜻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큰 변화는 아니었다. 모두와 공통적으로 말할 수 있는 스몰 토크 소재가 하나 늘었을 뿐이다. 하지만 작은 변화라고 해서 아주 반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겨울의 서늘한 공기와 냄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딘가 미묘하게 우울한 날씨는 걸음과 함께 마음을 달래기 좋았다. 이 꼬인 심성과 취향은 죽을 때까지 유지되는 건지, 그저 이마를 친다. 그렇지만 계절이 바뀐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건 여유가 생겼다는 말과도 같다. 아니면 주가 되어야 할 부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뜻이거나. 둘 다 반가운 결과는 아니다. 지금 게으르다는 뜻이니까. 버릇처럼 수많은 일들을 벌이고 수습하는 수확의 때가 왔다. 이..
마음 챙김
마음 챙김
2023.09.10구름이 포근한 솜사탕처럼 하늘을 거닐고, 시리고 푸르른 바다 위로 느릿느릿 춤춰요. 천천히 움직이는 한 폭의 그림이 거대한 네모 프레임 안에 담겨 있어요. 아이는 그 프레임 앞에 턱을 괴고 한없이, 한없이 바라봐요. 그 느린 작품의 무엇이 즐겁길래 그리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걸까요. 어떻게 가던 길을 멈추고 창문 너머에 시선을 둘 수 있는 걸까요. 내 시선은 언제나 그 창문 너머가 아닌 아이에게 있어요. 나는 그 작품들을 즐기지 못하거든요.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건 핑계고, 그냥 재미가 없는걸요. 그치만 다들 아이가 부럽다고 말해요. 나도 그렇고요. 나는 오히려 아이가 창문 밖을 들여다보는 것에 압도되고 있었어요. "마음 챙김이라는 방법이 있어요. 명상의 한 방법인데요, 생각하지 않고 오감으로만 느끼는..
불면증 상담
불면증 상담
2023.06.27"글쎄, 어떤 불안감에서 오는 걸까." 며칠 동안이나 눈을 갑자기 뜨던 그가 중얼거렸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그의 주장과는 달리 눈 밑의 어둠은 보이지 않았다. 모순적이게도 기운이 넘쳐 보였기에 어쩐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걱정이지만 나쁘진 않아. 이것저것 하니까 재밌어졌거든." 그리고는 잠들지 못한 대가로 완성한 목도리를 보여 준다. 쓸데 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무례한 것 같아 괜히 뻣뻣이 고개를 든다. 그는 이어서 최근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내가 보기엔, 너무 할 게 많아서 그러는 것 같아." "주말에 열심히 쉬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가 배를 부여잡고 아픈 표정을 짓는다. 어이 없네, 진짜로. "해야 한다랑 쉬고 싶다가 충돌한다는 거지 " "뭐... ..
~06/23 Log
~06/23 Log
2023.06.23
방향치
방향치
2023.06.18억눌린 채로 그 괴물이 나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소름끼치게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반달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그 안광으로 나를 노려본다. 두렵다. 통제되어 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장치를 손에 들고 있었다. 하나는 그것에게 고통을 주는 버튼.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해방할 수 있는 버튼이다. 나는 그것이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화들짝 놀라 오른쪽 버튼을 실수로 눌러버리는 나를 상상한다. 그 결말은 나의 죽음일까, 아니면 영원한 괴로움일까. 그것의 눈동자가 나를 탐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좋은 결말이 아닐 것은 분명하다. "이제 오른쪽 버튼을 누르세요." 뒤에 있던 나의 안내자가 말한다. 나는 순간, 멈칫하여 뒤를 돌아본다. "아니, 농담이에요. 정말 누르려고 했던 것도 아니잖아..
절제
절제
2023.03.11그는 정돈된 삶을 살았다. 주변 이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내보이지 않았고, 솔깃한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미소를 지으며 흘려냈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완벽한 사람이었다. 오랜 세월을 절제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존중하며, 그저 넓은 바다를 유영하는 삶이었다. 하지만 가장 그와 오래 했던 친구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일도 없음. 무엇을 원하는 지 알 수 없으니 더 접근할 수도 없음. 그러니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그와 함께할 수 있겠는가? 절제하는 것이 수동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삶인가? 친구는 항상 그를 위해 조언하고, 토론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동의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삶의 방식을 택할 수는 없었다. 친구는 서로의 욕망을 건전하게 ..
시간축 전쟁
시간축 전쟁
2022.10.08아주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파공음. 하늘과 하늘의 경계마저도 나누는 일직선의 궤적. 그 시리고 빠르게 스쳐나간 작은 울림을 듣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시작이구나. 모두가 그 기척을 느꼈는지, 자신이 가진 무기를 손에 들었다. 이후 작은 단서를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시선들이 허공을 떠돌았다. 수많은 초점들이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정해." 손을 들고 말을 꺼낸 것은 가장 예민하다 평가받는 그였다. "우리 차례가 아니야."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무기를 내렸다. 뒤이어 수많은 비수들이 하늘을 지나쳤다. 마치 수평으로 내리는 비처럼. 그것들은 모두를 티끌만큼도 건드리지 않고 이 시점을 지나쳤다. "...그 때 우리의 차례야." 순간, 사람들의 몸이 고꾸라졌다. 정확히는 그들의 몸에서 껍질이..
존재 증명
존재 증명
2022.06.23책장 위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사람의 손을 거친 지 오래 되었으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부자연스럽고 당연하지 않은 것은 새로이 이 공간에 들어온 그였다. 먼지 쌓인 책장을 헤집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정리된 배열을 흐뜨려놓는다. 그러한 행위에 반응하는, 손과 팔의 검은 그림자가 바쁘게 한 동작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움직인다. 고요했던 공간에 소리가 쌓여 간다. 종이가 서로 맞닿으며 스치는 소리를 만든다. 그리고 그 멍청이는 결국 원하던 것을 찾지 못한다.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 그가 갈망하던 지식은 이 도서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공간은 이곳 뿐이었다. 할 수 없지, 초라한 이곳에서라도 존재 증명을 실행해야만 했다. 그..
비어버린 구석의 한 자리
비어버린 구석의 한 자리
2022.06.12"그 사람, 요새는 찾아오질 않더라." A가 구석의 한 자리를 보며 툴툴댔다. 단골 한 명이 더 이상 오지 않아 매상이 줄었다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손님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내가 반응하지 않자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듣고는 있냐고 떠들어댔다. "더 마음에 드는 곳이 생겼나 봐."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닫았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다시 나는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그 구석 자리로 다가갈 때마다 어쩐지 마음 속이 허전했다. 단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B와 내가 그다지 대화할 일은 없었다. 그는 말없이 가게에 찾아와 메뉴를 주문했고 나는 내어주었을 뿐이다. 대화를 하는 것은 주로 A였다. 그 뒤 B는 이곳이 편안했는지 자주 들렀다. 그러니 가게에 늘 그가 존재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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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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